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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콘서트8회] 조선최대의 비극 -사도세자와 영조-

역사전문강사 배기성
2017-11-28 22:24
조회수 245

사도세자와 영조 유튜브클릭하기

1762년 음력 5월 그러니까 양력으로는 7월, 너무 더운 그날에 사도세자는 뒤주에 7주일이나 갇혀 있다가 죽었다. 

죽은 자는 영조의 친아들인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이고, 죽인 자는 누가 뭐래도 그 아버지이자 조선의 임금 영조이다. 영조 38년 임오년에 일어난 이른바 임오화변이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가, 조선시대의 비극적 로열패밀리의 역사는 조선전기의 계유정난(1453)과 조선후기의 임오화변(1762)가 꼽힌다. 

계유정난의 비극은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이 자기 형 문종이 일찍 죽자 그 아들 그러니까 자기 조카 단종을 너무 어리다고 해서,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다. 여기에 우리가 잘 아는 한명회, 신숙주 등의 정난공신들이 등장하게 되며, 단종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 죽음으로써  수양대군의 임금 됨을 거부한 사육신과 목숨은 버리지 않았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숨어버린 생육신 등 엄청난 비극적 역사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임오화변의 비극은 아버지 영조가 자기 아들 장헌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죽이는 아주 엽기적인 살해방식을 사용한다. 7월의 그 뜨거운 폭염에 장헌세자는 폐서인이 된 채, 뒤주에 가둬지는데, 그 위에 무덤처럼 흙과 풀을 심고 못으로 박고, 줄로 꽁꽁 묶어서 아예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 사건의 진상을 놓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당쟁의 희생양이 세자였다 ! 혹은 장헌세자가 미쳐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다닌 연쇄살인범이었기 때문에 응당 죽였다! 는 이야기까지 아주 갑론을박이다. 세자를 그렇게 꼭 죽여야 했는가 라는 당파를 시파라고 하고, 세자는 마땅히 죽음으로써 죄를 구해야 한다는 당파를 벽파라고 해서 조선후기에 사색당쟁이 시파벽파 양대당파 대결로 압축되는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역사콘서트는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를 중심으로 사도세자와 영조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좀 더 파헤처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노론과 남인의 대결에서 찾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노론과 소론의 대결이었다. 남인은 차라리 제 3자였다. 나 배기성 강사에게는 이 사건에서 늘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교수들이 설명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였는데, 조선의 청백리이자 최고의 영의정 5인 중에 하나로 기념되는 번암 채제공의 존재 때문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은 그 마음을 잡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장헌세자(뒤주에서 죽을때에 세자에서 폐해졌는데, 죽고 난 뒤, 아버지 영조가 '사도'라는 세자존호를 다시 붙여줌) 의 어렸을 적 시강원 스승이기는 했으나, 평생의 충성을 바친 대상이 바로 사도세자였던 것이다. 후일 정조에게 바친 충성도 알고보면 그 아버지에게 지킨 의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채제공이 정조시절 좌의정과 영의정으로 했던 그 수많은 민본주의정책들, 화성 신수도 건축, 거중기 개발, 신해통공 등이 모두 사도세자 생전의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대단한 채제공이 평생 충성을 바치고 의리를 지킨 사도세자는 과연 미친사람이었을까. 

이번 역사콘서트는 바로 그 의문에서 출발했다. 1755년 2월 전남 나주에 괘서가 한장 붙는다. 조정의 간신배들 덕에 도저히 살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한술 더떠서 이를 단속해야할 나주목사 이징하는 괘서의 내용을 두둔하고 나섰다. 1747년에 형벌을 가볍게 주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속대전이 나왔고, 1750년에는 군포를 2필 내던 세금을 1필로 줄인다는 반값세금인 균역법이 나왔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 그런데 1755년 2월의 나주괘서 사건부터 영조는 정말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다.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그 사람들이 정말 미웠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바로 소론세력이었다. 2월 괘서 사건에서 죽인 그 역적 윤지의 동생 윤혜는 5월의 과거시험에서 완전히 사고를 친다. 2월의 반란을 평정한 의미로 치르는 과거시험장에서 답안지에 임금들의 이름을 주욱 적어내고, 자신과 함께 한 동지들의 이름을 적어내고, 스스로를 죽이라고 한 것이다. 저 옛날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사형당한 심성연의 동생 심정연도 그 과거 시험장에서 똑같은 사고를 쳤다. 그러니 피바람이 불었다. 무려 500명이다. 500명 소론 의 뜻있는 유능한 젊은 선비들과 그 가족들을 그렇게 능지처참하고 도륙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영조였다. 그때, 대리청정을 하던 세자는 목숨을 걸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소론의 선비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바로 그 모습에 번암 채제공이 감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조는 사도세자마저도 정적으로 여기고 미워하게 된 것이었다. 

사도세자는 결코 미친 것이 아니라, 정말 소론 세력의 제거가 자신의 왕권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아버지 영조에 의해 타살당한 것이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첨부하는 동영상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늘 성원해주시는 #감성스토리교육원 의 #김윤정원장님 이 있으시기에 이런 좋은 기회도 마련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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